2012년 4월 24일 화요일

블랙 록슈터 TVA 감상(스포일러 다량 함유)

애플 무선키보드 샀다(4/23). 무선키보드로 처음 쓰는 글.
본 포스팅의 목표는 지난달에 본 TV시리즈 '블랙 록슈터'의 감상을 위한 것.
최종회를 본 직후에 감상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독감과 중간고사라는 그럴듯한(어흑) 핑계로 이제서야 포스팅.
이 글을 쓰기 전에 (당연히) 다른 평들을 좀 살펴봤는데 혹평들이 많더라.
세계관을 하나로 통합했어야 한다, 결말이 이상하다, 그리고 캐릭터 성향 및 비중에 대한 기존(게임이나 OVA 등의) 팬들의 불만 등.
하지만 나에게 이 애니메이션의 설정만큼은(자연스러운 CG로 박력넘치는 액션신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했기에 패스하고) 넘칠만큼 인상적이었다.

소녀들의 고민이나 괴로움 등 정신적 아픔을 대신 겪는, 그녀들과 동일한 외모의 소녀들이 총과 칼을 이용하여 서로 싸우는 세계가 있다.
그녀들은 감정없이, 단지 전투라는 행위를 통해서 현실세계의 그녀들이 겪는 정신적 괴로움의 아픔을 대신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세계의 그녀들이 전투 중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면, 현세계의 그녀들은 이세계의 그녀들을 존재하게끔한 원인인 정신적 고통을 싸그리 잊게 된다.
즉, 정신적 고통의 대상에 대한 관심, 집착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예전과 동일한 것이던, 새로운 대상이건, 정신적 고통이 또다시 생겨나게 되면,
이세계의 그녀는 부활해 다시 전투를 하게 된다.
사실 사춘기 소녀들의 고민들이야 '어른(지극히 법률적인)'이 된 입장에서의 고민과 비교하면 애교수준이고, 사치라 보여지지만
'사춘기 소녀'들이기에, 물질이 결여된 오직 정신만으로 연결된 인간간의 관계로 인해 발생한 고민이고 아픔이기에 그 무엇보다 심각하고 진지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우정이건 사랑이건, 너무나 좋아했고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자주 생각나지만, 어떤 문제(집착이건 질투건 짝사랑이건) 때문에 마음아파하던 대상이 있었는데
특별히 큰 이벤트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그냥 소소한 일상의 작은 일이었는데 어느날 한순간에 애정이 식어버리고 그 사람을 봐도 예전과 같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게 됨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그것이 이세계의 또다른 내가 죽은 것이라는 이 애니메이션의 설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세계의 소녀들이 다시금 사이좋게 지냈다고 하며 밝게 끝났는 듯...했으나
마지막에 다시금 부활한 스트렝스에게 블랙 록슈터가 난 앞으로도 계속 싸우겠다고 하는 부분.
많이금 질타를 받는 부분이긴 하던데, 오히려 나는 그것을 당연하다 느꼈다. 왜냐고?
과연 일련의 그런 사태를 겪고 다시 네명의 소녀들이 서로 친해졌다고 하더라도,
인간관계라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한번 좋은 관계가 되었다고 영원하리라는 낭만은 더욱더 옳지 않고.
스트렝스가 부활한건 유우가 또다시 정신적 괴로움이 생겼다는 의미일텐데, 이는 새로운 누군가와(혹은 남자일수도), 또는 그 4인방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게 어때서?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일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사람들과 부딪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자신과 타인이 다름을 느끼면서 커가는 것이 현세계가 아니던가.
이는 블랙 록슈터의 전신인 마토도 마찬가지이다. 블랙 록슈터의 싸움의 최초 목적은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게 싫어서, 아무에게도 상처주기 싫어서였지만 종국에는 모두의 마음을 죽여버리게 되는(그래서 주변의 어느 누구도 마토를 '좋은 아이' 정도로만 기억할 뿐 진심으로 마토를 좋아하고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 되는)것이었고 이는 인세인과의 전투를 통해서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처받는 것도 중요하고 상처입히는 것도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그녀도 이제 상처주는게 싫어서, 적을 만드는게 싫어서 타인에게 맞추는 것을 버리고 스스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일 수도 있고,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냐며 다시금 본연의 '모두의 마음을 사전에 잘라내는' 태도를 취하였을 수도 있다. 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블랙 록슈터의 싸움의 목적만 달라질뿐,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은 변함없으니까.

결국 거칠게(난해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관계란 얼마나 어려우며 결론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라는게 아닐까.
이 나이 먹고도 종종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며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타인에게 상처입고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혼자 고민하고, 괴로워하고있는 나를 보자면 그런 의미이리라 믿게 된다.
과연 이세계의 또다른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르고 얼마나 많은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부활을 하였고 지금도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는가.
전투와 고통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겠지만 이제 더이상의 죽음은 없었으면 좋겠다.
또다시 누군가를 예전과는 달리 무미건조하게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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