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3일 일요일

페퍼톤스 노래를 듣던 중 단상.

전후에 상황이 하나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어떤 노래 하나만으로 마음이 다소 가벼워지고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건
내가 단순하기 때문도, 인간의 감성이란 결국 그런 것이기 때문도 아니라
사실은 마음 구석 한 귀퉁이에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
넝마가 될 가능성 농후한 미래라고 하더라도 '미확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작은 가능성에 대한 얇디얇은 쉴드라도 치고 싶은 현실도피리라.

한줄 요약 : 노래 하나로 기분이 좋아진 것에 대한 궁색한 변명

2012년 5월 2일 수요일

로지피피 1집

이 앨범도 구입 및 청음은 근 3주 전이었지만 역시나 중간고사 이유로 포스팅이 늦어졌다.
사실 포스팅할지도 잊고 있었지만 예전에 음반 구입시 평을 썼던걸 읽어보니 꽤 재미있길래 역시 짧게나마 쓰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로지피피를 알게 된건 국내 모 (남성)잡지를 보다가 그녀에 관한 인터뷰를 본게 계기였고,
무엇보다 그녀가 '싱어송 라이터'라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여성가수 중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죄다 노래를 받아 부르는 '가수'이기에,
그 때 그 때의 프로듀서에 따라 앨범의 분위기가 바뀌는 점이 싫었고, 그래서 마음에 드는 여성 싱어송 라이터를 찾았었는데 아직까지는 괜찮은 소득이 없는 실정이었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여성 싱어송 라이터는 (많이) 마이너한 장르의 음악을 하더라)
게다가 이적과 루시드폴이 칭찬한 싱어송 라이터라니(그것이 인사치례일지는 몰라도)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라고 해도 그 후에 이름을 잊어서 음반매장 갔다가 그냥 돌아온 경우도 있었고(ㅋ) 그렇게 몇 주 정도 흐른 뒤에 작심하고 교보문고에 갔다. 뭐, 시험을 앞둔 스트레스를 풀려는 의도도 있었고.

이야기를 잠시 다른 쪽으로 돌려서, 내가 좋아하는 일본가수 중에 'Paris Match'라는 그룹이 있다.
예쁜 목소리는 아니지만 매력적인 음색의 여성 보컬과 작곡가(?) 조합인데
노래가 대부분 편안하고 부드러워 책을 보거나 배경음악(?)으로 듣기 좋은 노래들이 많다.
특히 Nightflight는 밤에 이륙을 기다리는 비행기 안에서의 감성(주로 귀국의)이 너무나 잘 살아있달까(가사는 모르지만), 그 착 가라앉은 쓸쓸한 감정은 최고다.

그런데 교보문고의 청음 시설에서 로지피피를 검색 후 듣는 순간 그 느낌이 딱 '마치 Paris Match의 노래를 한글로 번안해서 부른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표절이라는 말이 아니고 노래 분위기와 보컬의 음색이 정말 Paris Match와 닮아있었다.

고민할 것 없이 구입.
배경음악으로 듣기 좋다는 특성에 따라 시험기간 중 대부분을 이 앨범을 들으며 보냈다.
아직 1집이어서 그런지 세련된 맛은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의 앨범을 만든다면 내 필수 앨범 구입 가수가 될 것이 틀림없다. 괜히 새로운 시도한다고 다른 장르로 바꾸지 말아주시길.

2012년 4월 27일 금요일

레이디 가가 공연을 보며(관람의 의미가 아니라) 든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딱히 레이디 가가나 우리나라 공연문화 같은 거창한 것에 대해 쓰고자 하는게 아니다.
며칠 전에 우연히 본 레이디 가가 관련 다큐멘터리(라기엔 민망한 수준이지만) TV 프로그램을 보고
단지 옷차림 요란한 정신병자 싱어송라이터는 아니며 좋아할 만한 이유가 충분한, 꽤나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인지했다.
단지 음악적 취향과 몇가지 요소가 나랑은 안맞기에 나는 앞으로도 좋아하지 않을 예정이라는 정도.
다만 공연에 대한 내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 보게된 계기랄까.
나는 큰 규모의 공연장(올림픽 경기장 같은)에서의 공연은 가지 않는 편이다.
가수 얼굴은 보이지도 않고 노래는 단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어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일 뿐이고.
결국 TV로 보는 라이브중계보다 못한게 아닐까 하는 이유에서이다.
(라이브중계는 얼굴이라도 크게 나오지)
그래서 공연은 소극장 콘서트만 가는 편이고,
이번 아이유 첫번째 콘서트가 열린다는 글을 보았을 때도 그 장소가 경희대 평화의 전당이라는 걸 보고 갈 생각을 접었다(결코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뭐 그렇더라고 하더라도 그녀의 콘서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겠지.
그런데 몇명 되지도 않는 우리과 동기 중에서도 세명이나 오늘 레이디 가가 콘서트에 가더라.
그래서 물어봤지. 얼굴이 보이기나 하느냐고.
당연히 보이는 자리일리 만무하고 사실 예상가능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 분위기가 좋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좋다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마이클 잭슨 정도였다면(이제는 가능성이 없지만) 올림픽 경기장이 아니라 호남평야에서 한대도 갔겠지.
허나 잭슨은 아주 특별한 케이스이고(고인이 되었기에 더욱 그런 기분이 들 수 있으니) 소녀시대건 이적이건 그런 큰 공연장이라면 사양이다.
결국 나에게 있어서 공연장에 가는 이유는 그들과 다른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가수의 얼굴을 보는 것인 목적인 것인가.
하지만 그건 아닌게, 이적의 소극장 콘서트는 소극장이라고는 해도 두 번 다 얼굴을 자세히 볼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다. 그저 저기 이적 맞네 정도.
하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나에게는 큰 차이일 수도.
아예 누군지도 모를 거리에서 스피커의 소리만 의지하며 감상하는 것과, 최소한 그(혹은 그녀)가 저기 있고, 지금 노래를 하고 있다는게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게 나에게 가고 안가고를 결정하는 Ea값인게 아닐까.
그리고 이건 큰 이유는 아닌 것 같지만,
제대로 된 극장식의 의자가 아닌, 땅바닥에 이동식 의자에서 보는걸 싫어하는 것도 있겠다.
뭔가 정돈되지 않은 기분이랄까, 차분히 공연을 감상하는 목적이 아닌 인원을 수용하는 것이 목적인듯한 기분이라서. 게다가 그런데는 앞사람 머리 때문에 방해되는 가능성도 크고.
이렇게 쓰고 보니, 엄청 까칠한 타입같군, 나.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같이 가자고 하면 가겠지.
그건 그 공연을 보는 것보다 그 누군가와 기억을 공유하는 목적이니까.

2012년 4월 24일 화요일

블랙 록슈터 TVA 감상(스포일러 다량 함유)

애플 무선키보드 샀다(4/23). 무선키보드로 처음 쓰는 글.
본 포스팅의 목표는 지난달에 본 TV시리즈 '블랙 록슈터'의 감상을 위한 것.
최종회를 본 직후에 감상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독감과 중간고사라는 그럴듯한(어흑) 핑계로 이제서야 포스팅.
이 글을 쓰기 전에 (당연히) 다른 평들을 좀 살펴봤는데 혹평들이 많더라.
세계관을 하나로 통합했어야 한다, 결말이 이상하다, 그리고 캐릭터 성향 및 비중에 대한 기존(게임이나 OVA 등의) 팬들의 불만 등.
하지만 나에게 이 애니메이션의 설정만큼은(자연스러운 CG로 박력넘치는 액션신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했기에 패스하고) 넘칠만큼 인상적이었다.

소녀들의 고민이나 괴로움 등 정신적 아픔을 대신 겪는, 그녀들과 동일한 외모의 소녀들이 총과 칼을 이용하여 서로 싸우는 세계가 있다.
그녀들은 감정없이, 단지 전투라는 행위를 통해서 현실세계의 그녀들이 겪는 정신적 괴로움의 아픔을 대신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세계의 그녀들이 전투 중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면, 현세계의 그녀들은 이세계의 그녀들을 존재하게끔한 원인인 정신적 고통을 싸그리 잊게 된다.
즉, 정신적 고통의 대상에 대한 관심, 집착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예전과 동일한 것이던, 새로운 대상이건, 정신적 고통이 또다시 생겨나게 되면,
이세계의 그녀는 부활해 다시 전투를 하게 된다.
사실 사춘기 소녀들의 고민들이야 '어른(지극히 법률적인)'이 된 입장에서의 고민과 비교하면 애교수준이고, 사치라 보여지지만
'사춘기 소녀'들이기에, 물질이 결여된 오직 정신만으로 연결된 인간간의 관계로 인해 발생한 고민이고 아픔이기에 그 무엇보다 심각하고 진지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우정이건 사랑이건, 너무나 좋아했고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자주 생각나지만, 어떤 문제(집착이건 질투건 짝사랑이건) 때문에 마음아파하던 대상이 있었는데
특별히 큰 이벤트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그냥 소소한 일상의 작은 일이었는데 어느날 한순간에 애정이 식어버리고 그 사람을 봐도 예전과 같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게 됨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그것이 이세계의 또다른 내가 죽은 것이라는 이 애니메이션의 설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세계의 소녀들이 다시금 사이좋게 지냈다고 하며 밝게 끝났는 듯...했으나
마지막에 다시금 부활한 스트렝스에게 블랙 록슈터가 난 앞으로도 계속 싸우겠다고 하는 부분.
많이금 질타를 받는 부분이긴 하던데, 오히려 나는 그것을 당연하다 느꼈다. 왜냐고?
과연 일련의 그런 사태를 겪고 다시 네명의 소녀들이 서로 친해졌다고 하더라도,
인간관계라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한번 좋은 관계가 되었다고 영원하리라는 낭만은 더욱더 옳지 않고.
스트렝스가 부활한건 유우가 또다시 정신적 괴로움이 생겼다는 의미일텐데, 이는 새로운 누군가와(혹은 남자일수도), 또는 그 4인방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게 어때서?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일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사람들과 부딪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자신과 타인이 다름을 느끼면서 커가는 것이 현세계가 아니던가.
이는 블랙 록슈터의 전신인 마토도 마찬가지이다. 블랙 록슈터의 싸움의 최초 목적은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게 싫어서, 아무에게도 상처주기 싫어서였지만 종국에는 모두의 마음을 죽여버리게 되는(그래서 주변의 어느 누구도 마토를 '좋은 아이' 정도로만 기억할 뿐 진심으로 마토를 좋아하고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 되는)것이었고 이는 인세인과의 전투를 통해서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처받는 것도 중요하고 상처입히는 것도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그녀도 이제 상처주는게 싫어서, 적을 만드는게 싫어서 타인에게 맞추는 것을 버리고 스스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일 수도 있고,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냐며 다시금 본연의 '모두의 마음을 사전에 잘라내는' 태도를 취하였을 수도 있다. 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블랙 록슈터의 싸움의 목적만 달라질뿐,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은 변함없으니까.

결국 거칠게(난해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관계란 얼마나 어려우며 결론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라는게 아닐까.
이 나이 먹고도 종종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며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타인에게 상처입고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혼자 고민하고, 괴로워하고있는 나를 보자면 그런 의미이리라 믿게 된다.
과연 이세계의 또다른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르고 얼마나 많은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부활을 하였고 지금도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는가.
전투와 고통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겠지만 이제 더이상의 죽음은 없었으면 좋겠다.
또다시 누군가를 예전과는 달리 무미건조하게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2012년 4월 19일 목요일

벚꽃

벚나무가 아름다운 이유는 연분홍빛의 하얀색 잎을 가진 나무처럼 보이는 비현실성과 며칠만에 잎을 흩날리고 일년을 기다려야 다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희소성 때문 아닐까.
내 마음의 어렴풋한 소망이 왜 아리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알겠어.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진 몰라도
벚나무를 보고 있으면 그보다 더욱 신비한 아름다움도 현실에서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걸.
오랜만에 느껴지는 행복감.